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레 군항 공습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1945년 7월 당시 [[연합함대]] 사령장관은 [[일본 제국 해군]][[중장]] [[오자와 지사부로]] [[제독]][* 왜 사령장관임에도 대장이 아닌 중장인가 하면 이 사람은 대장 이상으로의 승진을 끝까지 거부했기 때문이었다.]이었다. 오자와 제독은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전력을 보존하여 패전 후를 대비하려고 했고 항전파들은 남은 [[수상함]]을 모조리 해안 요새로 활용하여 본토 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양측은 목적은 다르지만 어쨌든 함대의 출항을 막는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었다. 때문에 보급 및 수송 목적으로 움직이는 소형함들을 제외하면 [[일본]]의 모든 대형함들은 항구에 숨어 있었다. 게다가 움직이고 싶어도 [[커티스 르메이]] [[장군]]이 깔아 놓은 [[기뢰]]밭을 돌파해야 했다. 아니 그 전에 당장 대형함을 움직일 [[연료]]도 바닥나 있었다. 연합함대 최후의 전력이 그렇게 안전한 구레 군항에서 숨어있는 걸 본 [[미합중국 육군|미 육]][[미합중국 해군|해군]] 수뇌부는 골치 아파하면서도 후일 있을 [[몰락 작전|일본 본토 상륙전]]에서 일본 해군이 방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사전에 미리 연합함대의 전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. ~~그리고 [[홋카이도]]까지 폭격했음에도 더 이상 때릴 표적이 안 보이기도 했다.~~ 이미 구레는 3월 19일에 대규모 공습을 받은 바 있었는데 이때는 [[일본군]]이 마지막까지 남은 전력을 다한 결사적 저항을 했다. 실제로 1945년 3월 19일 제1차 구레 공습 당시 일본은 대규모 [[카미카제]]는 물론 [[N1K-J 시덴]]으로 구성된 [[343 해군항공대|정예 요격기 부대]]까지 출동시켜 결사적으로 구레항을 지키려고 노력했다. 덕분에 미군도 항공모함 1척([[에식스급 항공모함|CV-13 프랭클린]])이 대파되고 [[함재기]] 부대가 큰 피해를 입는 등 손실이 많았으며, 항구 폭격 자체는 실행되었지만 생각만큼 재미를 보지 못했다. 그러나 1945년 7월의 시점에서는 [[오키나와 전투]]에서의 [[카미카제|극심한 소모]]로 더 이상 띄울래야 띄울 전투기도 없었고(...) 그나마 남은 잔존 기체들은 본토 결전을 대비하여 출격을 극도로 자제하는 실정이었다. 반면 미군의 전력은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'''강화되고 있었다.'''[* 이때 즈음엔 [[F6F 헬캣]], [[F4U 콜세어]], [[P-38 라이트닝]], 그리고 [[P-51 머스탱|2차대전의 아이돌]]과 같은 최신 기체들이 배치되어 태평양 상공을 장악하던 상태였고 [[B-29]] 같은 폭격기까지 개발되어 [[도쿄 대공습]]과 같은 악몽이 실현되던 때였다.] 미 해군 [[제3함대]] 사령관 해군 [[대장(계급)|대장]] [[윌리엄 홀시]] 제독은 휘하의 [[항공모함]] 기동부대를 동원하여 구레를 공격하기로 했다. 미 해군은 해군 중장 존 S. 매케인 시니어 제독[* 2008년 [[미국]] 대선 [[공화당(미국)|공화당]] 후보였던 [[존 매케인]]의 할아버지다. 참고로 매케인 집안은 이때부터 시작해서 4대가 다 해군에 복무했다.]이 지휘하는 TF38을 동원했고 [[영국 해군]]도 3함대에 편입된 TF57에 속한 항공모함 3척(HMS 포미더블, HMS 인디패티거블, HMS 빅토리우스)을 동원했다. 이 공격은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일본 본토 공격의 연장선상에 있었다. 한편 홀시의 함대에는 [[영국 태평양 함대]]가 동행하고 있었다. 이는 [[태평양 전쟁]]에서 자국의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[[윈스턴 처칠]]이 [[루즈벨트]] 생전에 담판을 통해 얻어낸 성과였는데, 미국 해군 입장에선 "'''아오 우리가 잽스 애들 다 두들겨 팼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'''" 수준의 취급을 받았다.[* 틀린 생각도 아닌 것이 [[제2차 세계 대전]] 당시 태평양 전장에서 [[영국]]은 1941년 후반-1942년 초 [[남방 작전]]으로 [[일본군]]에게 한 번 거하게 털린 뒤 1944년까지 전투 행동 일체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.] 때문에 홀시는 영국 함대 사령관에게 '''[[오사카]]와 [[시코쿠]]에 일본군 함대 및 기지가 있으니 그쪽을 처리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'''했고 영국군 사령관은 '''그 정중한 요청을 흔쾌히 수락'''하여 구레 공습에서 빠지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